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재계 라이벌 시리즈 (문단 편집) === 치열했던 라이벌리 === 모기업들의 경쟁만큼이나 정말 치열했다. 경기뿐 아니라 사소한것 하나까지 상대팀보다 낫거나, 최소한 동등해야 했을 정도. 당시 양팀의 라이벌과 관련된 일화을 몇가지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 [[현대 유니콘스]]가 처음으로 선수단 이동에 버스 3대를 동원하자 [[삼성 라이온즈]]도 이에 질세라 선수단 버스를 2대에서 3대로 늘렸다. * 현대 유니콘스는 인수 첫해인 1996년 선수들에게 '''삼성과의 경기에서 이기면 당일에 보너스를 현금으로 모든 선수들에게 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걸었고 당연히 이를 알게된 삼성도 맞불 작전을 놓게 되었다. * 1996시즌 종료 후 삼성의 [[강기웅]]은 현대로 가는 트레이드를 거부하며 은퇴 의사를 밝히기도 했는데 당시 언론에서는 "강기웅이 현대의 수준 낮은 선수들과 뛰는걸 거절했다"라는 루머들을 언급하며 불을 지피기도 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1996년은 현대가 인수 창단 첫해에 바로 준우승을 한 해이며, 삼성 라이온즈는 창단 이래 최하위인 6위를 찍은 해라는 점이이었다. 그리고 이 6위라는 기록은 장장 20년을 버티다 2016년에 와서야 깨진다. *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재정난에 시달리던 [[해태 타이거즈]]나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들을 현금 트레이드로 데려온 것도 이 두 팀이다. 어차피 죽어나가는 건 다른 기업, 그룹들이지 현대와 삼성에게는 남의 일이었던 것이댜. * 1997년 현대그룹은 얼마를 들여도 좋으니 [[드림팀]]을 만들어라라는 지시를 구단측에 내렸고 구단은 이에 따라 [[쌍방울 레이더스]]에 선수 2명과 현금 4억을 내주고 [[박경완]]을 데려오는데 성공한다. 삼성은 이에 질세라 [[해태 타이거즈]]의 [[조계현]]을 현금 4억원에 데려왔다. 이후 현대는 [[이명수(1966)|이명수]][* 당시 OB 구단측에 현금을 주고 방출 해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김인식]] 당시 OB 감독도 구단 운영방침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를 데려 왔고, 이명수 영입 다음날에 삼성은 [[김형석]]과 [[정회열]]을 데려온다. * 1998년 현대는 [[쌍방울 레이더스]]의 좌완투수 [[조규제]]를 [[박정현]]과 [[가내영]], 6억원의 현금과 맞바꿔서 데려왔다. 그리고 그해 현대가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에 빡친 삼성 수뇌부는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무조건 최상급 팀을 만들어라는 지시가 떨어지며 [[한화 이글스]]에서 [[노장진]]을 트레이드로 데려온 후 [[곽채진]], [[황두성]], [[양준혁]]을 내주면서 현금 18억을 추가해 [[해태 타이거즈]]의 [[임창용]]을 영입, 또한 [[OB 베어스]]의 에이스 [[김상진(1970)|김상진]]을 현금 6억 5천을 주고 데려왔으며, 이어 쌍방울 레이더스에 [[이계성]], [[양용모]]에 현금 20억까지 얹어준 뒤 [[김기태(1969)|김기태]]와 [[김현욱(야구)|김현욱]]을 데려오기에 이른다. * 1999년 현대는 [[안병원(야구선수)|안병원]]에 현금 7억을 얹어주며 [[LG 트윈스]]로부터 [[임선동]]을 데려왔고, 삼성은 포수난을 해결하기 위해 [[이상훈(우완투수)|이상훈]]을 [[두산 베어스]]에 내주고 [[진갑용]]을 데려오는 선택을 한다. * 1999시즌 종료후 삼성은 프랜차이즈 [[김상엽]], [[박충식]]을 보상선수로 내주는 선택을 하고 FA 시장에서 [[김동수(야구)|김동수]]와 [[이강철]]을 데려왔으며, 현대는 [[심재학]]을 트레이드로,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 예정이던 [[마일영]]을 현금 5억원을 주고 데려왔다.[* 정확히는 쌍방울이 지명한 마일영의 지명권을 5억을 주고 사왔다. 이 일 이후 신인 지명권 트레이드가 금지되었다.] 이런 엄청난 돈지랄이 이어지자 리그의 전력 불균형에 대한 불만 섞인 목소리가 커졌고 야구계 안팎에서 두팀을 향한 쓴소리가 이어졌다. 그런데 재밌는건 이런 돈지랄 레이스에서 현대가 삼성보다는 이득을 봤다는 것이다. 현대는 이명수, 심재학, 박종호, 임선동, 마일영을 잘 써먹었고 삼성에서 트레이드로 SK갔다가 방출당한 김동수가 현대에서 되살아나 주전 포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삼성은 이름값이나 돈에 비하면 다 먹튀가 되는 바람에 손해를 왕창 보았다. 그나마 건졌던 것은 임창용과 진갑용 정도였고, 나중에 기반이 흔들린 현대에서 박종호, 박진만과 심정수를 빼왔지만 이들은 전만한 기량을 보여주진 못했다. 경기 또한 양팀이 치열했는데, * 1996년 6월 2일 [[숭의야구장]]에서 열린 경기에서 [[정명원]]이 삼성의 빈볼에 대한 보복구로 [[이승엽]]에게 빈볼을 던지면서 [[벤치 클리어링]]이 이어졌고 이것이 패싸움으로 이어지는 추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사실 이날 경기의 MVP는 훗날 [[넥센 히어로즈]]의 감독이 되는 '''[[장정석]]'''이었지만 이 [[벤치 클리어링]]이 장정석의 결승 대타 [[만루홈런]]을 묻어버리면서 장정석의 활약을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다.] [[http://osen.mt.co.kr/article/G1109525861|정명원이 이승엽에게 빈볼을 놓은 사연…현대와 삼성, 두 재벌의 대리전]] 이 사건을 보고 받은 현대의 고위 관계자는 "그게 현대의 정신이다"라며 극찬했다는 [[카더라]]가 야구판에서 나왔다. 실제로 당시 벌금을 현대 구단에서 대납해주고 금일봉도 받았다고 한다. [[정명원]] 문서 참조. * 2002년과 2003년에는 양팀의 주포인 이승엽과 [[심정수]]의 홈런왕 경쟁이 치열했다. 홈런 레이스 결과는 각각 '''1개'''[* 2002 시즌 이승엽 47홈런, 심정수 46홈런.], 3개[* 2003 시즌 이승엽 '''56홈런''', 심정수 53홈런.] 차이로 모두 이승엽의 승리로 끝났고, 시즌 MVP도 모두 이승엽이 차지했다. 2002 시즌에는 이승엽이 '''마지막 경기 마지막 타석'''에서 홈런을 기록하면서 단독 홈런왕에 올랐고, 2003 시즌에는 두 선수가 모두 50홈런을 돌파하면서 [[오 사다하루]]의 한 시즌 최다 홈런 아시아 신기록에 도전하는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홈런 경쟁이 벌어졌다'''. 다만 세부 스탯에서는 양 선수가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을 보였고, 2003년의 경우 심정수가 OPS에서 이승엽을 크게 앞섰다.[* 2003 시즌 OPS 심정수 '''1.198''', 이승엽 1.127] * 두 팀이 라이벌로 있었던 기간 내내 줄곧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정작 포스트시즌 맞대결은 단 2번 밖에 없다. 그 중 한 번이 바로 '''9차전까지 치러진 [[2004년 한국시리즈]]'''. 4차전 [[배영수]]의 10이닝 노히트, 9차전 빗속의 [[조용준]]은 [[KBO 한국시리즈]]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가장 통쾌했던 장면은 [[오주원]](당시 오재영)의 심판 헤드샷이라고 한다. 참고로 다른 한 번은 양대리그 시절인 2000년에 치러진 플레이오프로, 당시 드림리그 1위 현대가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를 거치고 올라온 삼성을 4-0으로 압살했다. 삼청태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1989년 당시 [[태평양 돌핀스]]와 삼성이 사상 최초의 준플레이오프를 치룬 바 있으며, 결과는 2-1로 태평양의 승리. 결국 포스트시즌만 놓고 보면 '''삼성은 현대를 이긴 적이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